기후시민께 보내는 편지  

작년 10월 10일, 한강 작가가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는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까마득한 옛날처럼 느껴지지만, 그날의 소식은 여전히 또렷합니다. 안 좋은 뉴스만 가득하던 시절, 한강 작가의 수상은 한국이 잠시 숨을 고르던 순간이었습니다.

한강 작가는 수상소감에서 8살 때의 기억을 꺼냈습니다. “주산학원 수업을 마치고 나오자마자 소나기가 퍼붓기 시작했습니다. 아이들은 처마 밑에 모여 비를 피했고, 도로 건너편에도 사람들이 서 있었습니다. 그때 문득 깨달았어요. 나와 어깨를 맞대고 선 사람들, 건너편 사람들 모두가 ‘나’로 살고 있다는 것을. 내가 비를 보듯 그들도 비를 보고 있었어요.”

작가는 당시 경험을 수많은 1인칭들을 경험한 경이의 순간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우리는 종종 이 감각을 잊습니다. 다른 사람의 피부로 스며드는 비, 서로 다른 삶을 살아도 같은 하늘 아래 있는 감각을 말이죠.

연구소의 10월은 그 감각을 다시 떠올리며 시작합니다. 기후위기 등 여러 문제 속에서도, 서로의 자리에서 보고 듣고 느끼는 일. 우리 곁의 누군가가 보고 있는 풍경을 함께 바라보는 일. 그 작은 시선의 교차가 일상에서의 선택과 행동으로 이어질 때 기후대응을 위한 길이 조금 더 가까워질 것입니다.

  연구소의 한 달  

  이달의 연구 성과  

최근 녹색전환연구소가 발표한 여러 연구 중 가장 큰 관심을 받은 주제가 있습니다. 그건 바로 

‘무상버스’입니다. 연구소는 얼마 전 <작은 도시의 교통 혁명, 전면 무상버스> 이슈브리프를 발간했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별도의 광고를 하지 않았음에도 주요 소셜미디어(SNS)에서 자발적인 공유와 ‘좋아요’ 반응, 여기에 기사화까지 이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만큼 시민들이 지역 교통과 기후문제를 해결하는 실질적 대안으로서 이 주제에 공감하고 있다는 것으로 풀이됩니다.

무상버스는 지자체가 주민에게 버스 요금을 전액 지원하는 정책으로, 청소년·어르신·저소득층 등 교통약자에게 이동의 자유를 보장하는 교통복지 정책입니다. 동시에 대중교통 이용률을 높여 온실가스 배출 저감 효과도 기대할 수 있습니다.

즉, 무상버스는 교통약자의 이동권을 보장하는 복지 정책인 동시에 기후정의 차원에서도 중요한 의미를 가질 수 있다는 겁니다. 북유럽 에스토니아 수도 탈린이 2013년 세계 최초로 수도 단위 전면 무상교통을 도입했고, 2020년 룩셈부르크는 국가 차원에서 무상교통을 시작했습니다. 한국 역시 일부 지역에서 무상버스를 정책을 시행 중입니다.

연구소가 확인한 결과, 올해 7월 기준 전국 15개 기초지자체에서 전면 무상버스를 시행 중입니다. 경북 청송군·봉화군·문경시 등이 해당됩니다. 대부분 인구 10만 명 이하, 고령화율이 30%를 웃도는 지역들입니다.

이슈브리프 주저자인 고이지선 지역전환팀장에게 물었습니다. 왜 무상버스에 관심을 갖게 됐는지 물어봤습니다. 그는 이같이 답했죠. “농촌 지역이 인구는 줄어가는데 많은 곳에서 승용차 등록 대수는 늘어가고 있다는 데이터를 보고 놀랐습니다. 대중교통 인프라가 너무 부족하기 때문에 귀농하는 분들도 운전 면허 따고 간다는 말도 들었죠. 농촌 지역의 교통 문제에 대해서는 어떤 반전의 기회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실제로 농촌이나 중소도시의 경우 대중교통 인프라가 제한적입니다. 버스 노선이 적고 운행 간격이 길어, 주민들은 자연스럽게 자동차에 의존하게 됩니다. 이로 인해 지역의 교통 부문 온실가스 배출량이 높게 나타납니다. 실제로 비수도권의 교통 부문 1인당 온실가스 배출량은 평균 2.4톤으로 서울(1.2톤)의 2배에 달합니다.

따라서 무상버스 확대는 단한순 교통복지 정책을 넘어, 교통 불평등과 온실가스 배출 문제를 동시에 해결할 수 있는 현실적 대안입니다.

지자체 재정에 부담을 줄 것이라는 우려도 사실과는 달랐습니다. 연구소가 분석한 결과, 전면 무상버스를 시행한 15개 지역이 투입한 평균 비용은 7억 3,000만 원입니다. 1인당 1만 4,868원 수준입니다. 이는 기초지자체가 자체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재정자주도 대비 0.2% 수준입니다.

여기서 재정자주도는 지방정부가 자체적으로 조달해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예산 비율을 말합니다. 다시 말해, 외부 지원 없이도 충분히 운영 가능한 규모라는 뜻입니다.

연구소는 재정자주도가 전국 평균(50%) 이상이면서 고령화율이 30% 이상인 63개 지자체가 전면 무상버스를 우선 도입할 수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전남이 12곳으로 가장 많았고, 전북·경남이 각각 10곳으로 뒤를 이었습니다. 특히, 지자체를 넘어 광역 단위로 연결될 경우 정책 효과가 더 커질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됩니다.

고이지선 팀장은 “작은 도시에서 전면 무상버스가 들어선다고 해도 버스의 서비스가 무조건 좋아지거나, 승용차 사용이 당장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며 “그렇지만 생태적 한계선 안에서 번영된 삶을 만들어간다는 측면에서 전면 무상버스 정책을 생각해 주면 좋겠다”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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